풍교헌의 역사

(고) 죽헌 강웅위 선생님의 맥을 잇는 서당.

풍교헌은 청학동지역에서 가장 오랜 교육경력과 학식을 갖춘 (고)죽헌 강웅위 선생님의 대를 이어가는 유서 깊은 서당이었습니다.

(고)죽헌 강웅위선생님은 1925년 지리산 청학동에서 태어나셨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의 고통과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으시면서 우리 민족의 가장 험난했던 수난기를 사신 분입니다.
그 어렵고 험난함 속에서도 효심과 학문에 대한 깊은 열의는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면암 최익현의 제자이자 항일의병 유공자이신 습재 최제학선생, 몽헌 김석규선생, 석암 강위 선생 등 여러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셨습니다.

죽헌 선생님의 생업은 농사였지만, 밤이나 비오는 날에는 동네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훈장이셨고, 고된 노동과 생계의 와중에도 잠시만 시간이 나도 책을 보고 글을 쓰셨으며, 풍수지리학과 역학 등에도 조예가 깊으시며 서예 실력이 탁월하셨습니다.

20대 초반부터 지역의 인근 명사마을 시목마을 등에서 앞 다투어 훈장으로 초빙하기 시작하였고, 부모님의 3년상을 기점으로 청학동 자택에 서당을 열어 그때부터 평생을 청학동에서 농사와 후학 양성에 종사하셨습니다.

지역의 교육과 건전한 풍토조성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고,1990년대 말부터  현대문화의 변화에 맞춰 기존에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던 서당의 형태를 벗어나, 도시의 학생들에게 체험과 교육의 영역을 개방한 수신정 서당을 아들들과 함께 운영하여 많은 호응 속에서 좋은 결과들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3남 (현 강동의 훈장)과 함께 전국 최초의 산촌유학서당인 풍교헌 서당의 문을 열었습니다.

풍교헌 서당의 개설 이후 청학동과 묵계초등학교, 청암 중학교에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건강하고 창의적인 교육풍토가 조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풍교헌 출신의 학생들은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학습과 품행 모든 면에서 가장 반듯한 모습으로 항상 타의 모범이 되어왔으며, 대외적 경진대회나 전국대회규모의 행사에서 풍교헌 학생들이 이룩한 공로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이를 표방하여 서당형태의 대안학교들을 설립하게 되었고, 급기야  2021년 3월에는 이러한 시설에서 발생된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를 불러왔고, 이로 인해 풍교헌은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풍교헌이 쌓아온 명성과 신뢰, 그리고 대중들의 응원에 풍교헌은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계승과 보존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현대인들이 소흘하게 여기는, 가정의 질서와 예절, 전통문화와 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체험의 장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