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농촌유학원

국내 최초 산촌유학을 실시한 서당

1. 산촌유학의 유래
 산촌유학의 원형은 44년 전 일본의 아오키 다카야스라는 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국 못지않게 입시경쟁이 치열한 일본의 교육 현실에서 미래의 희망이 없다고 여긴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운, 교육의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겼던 부분은 인간에게 있어 삶의 기반은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삶의 기반인 자연을 상실한 채 자라고 있는 도시의 아이들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고, 그 아이들을 잠시라도 자연의 품속에 넣어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임대한 시골의 농가에 아이들을 모집하여 짧은 기간 동안 교육을 시작했는데, 이 실험적 교육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았고, 늘어나는 학생들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규모와 시설을 갖춘 ‘산촌유학센터’를 세웠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이 한 달에 10일 이상 지역 농가에 거주하며 농촌의 실제 삶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는 것을 교육의 원칙으로 정했다.

교사의 역할은 농가 어른들과 부모가 하고, 아이들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지정된 농가와 학교, 유학센터를 오가면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자연을 배우게 하였다.

그 이후 계속해서 많은 긍정적인 결과들을 보여 주었고, 그 영향으로 일본 지역에는 성공적인 산촌유학이 지속되고 있다.

2. 한국의 농,산촌유학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농촌유학’이 실시된 지 10년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 시작의 목적이 일본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나라는 학생 수의 감소로 시골의 학교들이 통폐합의 위기에 놓이게 되자, 폐교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각 지역별 학교 또는 교육청, 지역민의 주도하에 ‘농.산촌유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로 산촌유학이 시작된 것은 위 내용의 공식적인 기록보다 8년이 앞서는 2004년으로 보아야 한다.

위 내용은 교육청이나 학교 등 공공기관의 주도하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공식적으로 국내 최초의 ‘농.산촌유학’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의 산촌유학은 이미 2004년 1월에 청학동 풍교헌 서당에서 시작되었다.

3. 한국 산촌유학의 선구자 풍교헌 서당

풍교헌 서당의 산촌유학은 운영형태에 있어 일본의 산촌유학센터와 다른 부분도 많지만, 그 설립의 취지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풍교헌 서당의 강동의 훈장 또한 현실의 아이들이 처한 비교육적 환경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으며, 그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컴퓨터 게임기 등 각종 전자기기와 IT 기술의 발달로 게임과 사이버 세상에 매몰되어버리는 아이들의 암울하고 삭막한 정서와 인성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대안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200년~2001년, 당시 그의 고향인 청학동에 있는 묵계초등학교 역시 폐교 위기에 처해있었고, 교육 당국에서는 당연히 면 소재지에 있는 청암초등학교와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특별한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통폐합을 유도하는 마지막 공청회가 열렸고, 이미 통폐합이 결정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강동의는 청학동 지역의 서당에 도시 학생들을 장기간 머물게 하면서 묵계초등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일명 ‘산촌유학’이었다.

하지만 당시 청학동 지역에 있던 서당들은 모두 방학을 이용한 단기 체험캠프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로 인한 수익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서당 운영자들은 아무도 강동의가 제시한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 강동의는 풍교헌 서당을 건립하였고, 그 이름을 ‘대안교육 서당 풍교헌’이라고 명명하였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대안교육’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때였는데, 강동의는 남들이 다 하는,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방학캠프는 아예 실시하지 않고, 처음부터 오직 장기 산촌유학생만을 유치하기 시작하였다. 

풍교헌의 산촌유학 또한 일본의 산촌유학처럼 처음부터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시작 6개월만에 모집 정원 20명이 다 채워졌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나자 나머지 서당들도 모두 산촌유학생을 유치하기 시작하여, 어

소수인원 가족적인 분위기로 따뜻함

지리산 산촌유학, 농촌유학

산촌유학이란? 도시 생활을 벗어나 별이 많은 산촌에서 학업을 이어나가는 형태의 교육기관입니다.
가까운 공교육 산골학교와 대안교육기관을 연계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등부 - 신천 초등학교, 또는 묵계초등학교
중학교 - 청암중학교 또는 덕산중학교

강동의 훈장이 직접 운영하는 청학동에서 유일한 정통서당

풍교헌은 청학동지역에서 약 100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유일한 정통서당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외지인, 혹은 청학동 사람들에 의해 상업적 목적으로 세워진 서당이 청학동 뿐만 아니라 청학동 인근 마을에 최대 22곳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시설들에서는 자주 언론에 알려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들을 발생시켜, 청학동 서당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2021년에 서당 2곳에서 학생들끼리 폭력사건이 발생하여 언론에 보도되면서, 서당에 대한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습니다.

그 여파로 가장 큰 오해와 피해를 입었던 곳은 바로 풍교헌이었습니다. 
청학동지역에 10여개의 서당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동안 방송이나 언론에 많이 알려진 김봉곤 훈장이나, 강동의 훈장이 운영하는 풍교헌서당만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여 많은 비난과 욕설을 하였습니다.
편파적인 여론으로 인해 서당교육을 통한 뛰어난 교육적 효과들은 가려지고, 마치 현대사회에서 매장시켜야할 구시대적 유물 또는 사회악으로 취급받아 서당을 운영할 의지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은 교육적 기능을 잃어가고, 아이들의 정서는 점점 더 거칠어져 가고, 각 가정과 사회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풍교헌은 아이들의 미래와 우리나라의 미래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 1명의 아이라도 건전한 사회인으로 육성해내고, 이 험한 세상에서 끈질기게생존할 수 있는 그런 강한 아이로 키워 내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사명임을 깨닫고
이에 무겁고 힘든 발걸음을 다시 내딛게 되었습니다.